대구 도심의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적벽돌 건축물을 여럿 만날 수 있다. 1900년대 서양 건축가(신부)와 화교 출신 건축기술자가 건립한 건축물이다. 이런 벽돌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브릭(brick) 로드’가 대구 역사 여행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화교협회를 출발해 계산성당~선교사 주택~계성중학교~성유스티노 신학교~성모당까지 걷다 보면 대구의 진짜 역사를 만나게 된다.
브릭 로드에서 만날 수 있는 인상적인 건물은 계명대 동산의료원 경내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 주택 세 채다. 1910년께 선교사들이 설계한 이 주택들은 대구 지역에 처음으로 서양식 주거 양식과 생활상을 소개했던 몇 안 남은 근대건축 유산이다.
이 가운데 스윗즈 주택은 마르타 스윗즈 여사를 비롯해 계성학교 5대 교장인 헨더슨, 계명대학장을 지낸 켐벨 등의 선교사들이 살았던 집이다. 서양식 주택에 한국식 서까래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이 인상적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 구조가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구의 초기 서양식 건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스윗즈 주택 북쪽 정원에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이 자라고 있다. 1899년 동산병원 초대 원장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어 키웠으며,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자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로 알려졌다.
챔니스 주택 건물 양식은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으로 꾸며져 있다. 대구의 개신교 선교사와 당시의 건축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지금은 1900년대 전후의 동서양 의료기기 등이 소장된 의료박물관으로 꾸며져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을 엿볼 수 있다.
선교사 주택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블레어 주택은 붉은 벽돌로 된 굴뚝이 있고 건물 내부엔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있다. 1900년대 미국의 방갈로풍에 가까운 주거 건물로 현재는 조선시대의 서당과 1960~197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 등을 재현해 놓은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계산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유스티노 신학교가 있다. 1914년 10월 1일 개교한 대구대교구 최초의 신학교로, 현 대구가톨릭대의 출발점이 된 건물이다. 드망즈 주교가 신학교 설립을 위해 세계 각지에 원조를 구했을 때 중국 상하이에 사는 익명의 신자가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조건으로 거액을 희사해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성유스티노 신학교’가 되었다. 1945년 일제 탄압으로 폐교되기까지 67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1991년부터는 대구관구 대신학원이 이곳으로 옮겨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신학교 내에는 성모당이 있다. 성모당은 사경을 헤매는 병자도 낫게 한다는 ‘기적의 샘물’로 유명한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서 세운 곳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루르드 성모굴의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면까지 거의 흡사하게 지었다고 한다.
대구 천주교회 초대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가 건축했으며, 1917년 7월 착공해 1918년 8월 15일 완공했다. 성모당은 교구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북향으로 세운 붉은 벽돌 구조의 건축물이다. 성모당 외관은 화강암 기초 위에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과 수평띠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 벽면은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각 부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 짜임이 정교하다.
대구=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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